초보 미용사

바쁜 일정에 미뤄오다가, 강남역 골목을 지나가다가 눈에 띄는 미용실에 들렀다.

여러 명의 미용사가 일하는 미용실, 늘 그렇듯 대기 중인 미용사가 배정되어 머리를 잘라주는데… 가위질을 하는 손놀림도, 머리칼을 잡는 손길도, 긴장해서인지 경직되고 뭔가 어색하다. 백퍼센트 확신하건데 채 몇명 잘라보지도 못한 초보 미용사가 분명하다.

 

사실 어떤 직종이건 초보의 시절을 거칠 수 밖에 없다. ‘세상에 초보 아니었던 사람이 어딨겠어.’

의대 학생 시절, 응급의학과 실습을 돌면 ABGA 검사를 위한 동맥혈 채취를 한 케이스씩 시켰다. 실습생끼리 서로의 동맥혈을 채취하는 연습을 마치고 처음으로 나서는 실전인지라 실패의 확률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비교적 채취하기 쉬운 환자로 배정을 해준다. 내게 배정된 환자분은, 일흔이 넘어보이는 연세 많으신 남자분으로 마르고 피부가 얇으셔서 동맥 혈관이 툭- 불거져 나와있었다. 그야말로 ‘날 좀 찔러주소-‘ 라며 보란듯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동맥혈관… 너무 쉬워보여서 대담하게 주사바늘을 찔렀지만 혈관이 옆으로 슉- 미끄러져 이동하면서 실패. 환자에게도 죄송하고, 스스로도 느끼기에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혈관이 너무 잘 움직이시네요..’ 라는 상투적인 핑계를 대고 다시 시도한다. 그걸 누가 믿겠냐만은…

결국 그 어느 누구도 초보 시절을 피해갈 순 없기 때문에, 초보 시절을 어떻게 잘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어느 미용실을 가건, 평범한 스타일을 원하며 까다롭게 굴지 않는 나인지라 커팅에 30분 이상을 걸린 적이 없었지만.. 초보 미용사는 떨리는 손으로 1시간 넘도록 열심히 머리를 잘라주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푹 패인 옆머리에, 전반적으로 쥐뜯어먹은 듯 듬성듬성 패여있고, 윗머리는 자르는둥 마는둥해서 안깎은지 몇달은 되어보이고, 앞머리는 일자로 가다가 갑자기 비스듬하게 떨어지는 요상한 컷이다. 이의를 제기하는 내게, ‘머리 감고 다시 볼게요..’ 라며 둘러대는 말을 하고는 대충 드라이로 눌러내려 때워보려고 한다. 결국 하나하나 얘기해서 푹 패인 부분을 약간 가다듬고, 삐뚤빼뚤한 머리 라인만 가까스로 정리하는걸로 마무리했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려고 계속해서 옆머리를 자르다보니 어린 학생 시절에나 하던 아주 단정한 머리가 되었다.

 

‘뭐 나야 어떤 머리스타일을 해도 좋아해주는 부인이 있고, 직장에서는 수술모를 눌러쓰고 살기에 누구에게 헤어스타일을 보여줄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머리는 결국 다시 자라니까…’

나도 초보 시절을 많이 겪어봤기에, 첫 손님을 받을때의 긴장감과 그 상황에서의 고민과 걱정, 노력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이해되서 별 컴플레인 없이 계산을 하고 나왔다. 대충 둘러대고 얼버무리려던 그 모습은 약간 괘씸했지만, 그래도 혼자 어떻게든 열심히 마무리해보려던 모습에 화를 풀었다.

 

처음으로 눈 수술을 해드렸던 환자분이 기억난다.

수 차례 수술을 참관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눈 수술 관련 책자를 여러번 정독한 뒤, 자신있게 수술에 임했지만- 이론과 실제는 어찌나 다른지… 운좋게 의사를 침착하게 잘 따라주시는 좋은 환자분을 만나서 힘들었던 수술을 다행히도 잘 마쳤지만, 환자분도 나도 너무나 고생을 많이했던 수술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퉁퉁 붓고 멍든 눈 때문에 컴플레인을 할 법도 했는데, 무덤덤하게 잘 견뎌주셨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 초보 미용사도 어쩌면 평생 일하는 동안 나를 고맙게 기억할런지도 모르겠다. 무덤덤하게 넘기길 잘한 것 같다.

By |2018-06-09T14:23:52+00:002016-03-23 05:42|Categories: Thought|Tags: , , , , |4 Comments

4 Comments

  1. SONYLOVE 2016년 3월 23일 at 6:21 오전 - Reply

    마루타가 되셨네요;;;;
    아마 다음에는 훨씬 실력이 향상되어있을겁니다.
    확인차 방문을 해보심이;;;;

    • Blah.kr 2016년 3월 31일 at 2:50 오후 - Reply

      다시 방문하는 건 2년 정도 뒤로 미뤄보겠습니다. 기르는데 시간이 꽤 걸렸거든요…
      2년 뒤에도 제 얼굴을 기억하신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서 멋있게 잘라주실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2. Jekkie 2016년 3월 23일 at 11:51 오전 - Reply

    그 분이 너 같은 손님을 많이 만나서 잘 성장하실 수 있길.

    • Blah.kr 2016년 3월 31일 at 2:53 오후 - Reply

      나만 이해해주고 산다 생각하면 속상할 일들도, 나 자신도 항상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아요.
      잘 성장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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