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상보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중,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에 대한 답변 내용.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면 내가 좋은 것이 마음의 성질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행복해지고 싶거든 남을 좋아하고 사랑하라는 겁니다.내가 산을 좋아하는데 산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산을 미워하게 되지는 않지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으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미워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바라기 때문에 그 사람이 미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산을 좋아하지만 미워하지 않는 것은 산이 나를 좋아해주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인 것처럼,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게 없으면 나도 상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쁨을 얻으려면 베풀어야 할 뿐만 아니라 베풂에 따르는 보상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을 베풀든 재물을 베풀든 베푸는 것이 보시입니다. 그런데 그 베풂의 결과로 무언가 보상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개입되면, 그것이 때로는 불행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그것마저도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바라는 마음을 없애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라는 마음 없이 베푸는 것을 ‘무주상보시’라 합니다. ‘무주상보시’의 ‘상’은 ‘내가 너를 도와줬다.’ 하는 생각을 말합니다. ‘내가 너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부모가 이런 말을 자식한테 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내 공을 알아서 나중에 갚아라.’ 하는 암시를 주기 위해서이지요. 이렇게 바라는 마음, 즉 상이 괴로움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니 이걸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공’을 ‘허무’라고 잘못 이해하는 것처럼 이 분은 지금 ‘무주상 보시’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염려를 하는 듯합니다. 이 분은 욕망을 인간 행위의 동력이라고 보기 때문에, 만약에 욕망을 놓아버리면 인간에게 행위의 동력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욕망을 내려 놓으면 행위의 동력이 더 생기는지, 아니면 행위의 동력이 없어지는지는 욕망을 놓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일단 욕망을 한번 놓아보세요. 상대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면 상대에게 무관심해지지 않습니다. 상대에 대한 집착을 놓으면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생깁니다. 상대를 이해하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은 상대에게는 고통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자식한테는 엄청난 고통이 되고 감옥이 되는 거예요.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입니다. 이런 사랑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계속 갈등을 일으킵니다. 부처님법은 무조건 남을 위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한테 바라지 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내가 편안하고, 이해하지 못 하면 내가 답답해지니까 남을 위하는 마음을 내는 게 나한테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라는 마음 없이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면, 관여하지 않는 게 상대방한테 좋으면 관여하지 않고, 관여하는 게 상대방한테 좋으면 관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그 사랑은 항상 상대방과 자신에게 이익이 됩니다.

 

바라는 게 없는 사랑. 누군들 몰라서 못하겠냐만… 사실 ‘감정’ 을 가진 존재인 사람의 특성이 그렇지가 않기에,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걸 실천한다는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테다. 그럼에도 법륜 스님의 말씀을 담아두고 싶은 이유는-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어려운게 중생이지만, 현자의 말씀을 자꾸 되뇌이며 노력하는 자만이 결국 조금이라도 더 실천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주상’ 이라는 것이, ‘나는 ~이므로 ~해야 한다.’ 라는 식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잡념 조차도 없는, 그저 마음에서 순수하게 ‘하고 싶다’ 는 의도가 일어나서 하는 행위라고 하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아무런 계산이나 분별도 없는 순수한 마음이라는 게, 잡념을 버리려는 노력 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건지 궁금해진다. 단 몇 분이라도 무념무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평범한 존재라는 사실도 커다란 벽이고, 게다가 아무리 순수한 마음이라고 할지라도 분별력 없이 정당화되기 어려운 감정들도 많은데 말이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사랑하는 관계. 대체 어떤 걸까.

 

어쩌면 ‘내가 왜 좋니?’ 라는 질문에, 그냥 ‘너니까.’ 라는 단순한 답변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 무주상보시에 가장 근접한 마음일 수도 있겠다.

By | 2017-07-23T12:06:13+00:00 2015-10-20 07:31|Categories: Thought|Tags: , , , , |2 Comments

2 Comments

  1. 두 아이의 엄ㅈ마 2015년 11월 22일 at 3:33 오후 - Reply

    좋은 글 잘 읽고, 잘 새기고 갑니다.^^

    • Blah.kr 2015년 12월 7일 at 5:25 오전 - Reply

      공감을 하셨다니 좋습니다!
      놀러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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